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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회계 입문편(도서/링크 모음)

제목이 거창하게 느껴지는데, 언젠가 한 번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정리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투자 분야에는 진짜 투자 책들을 보면서 입문했는데, 이런 책들은 회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거나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 워런 버핏 하면 투자자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분이 투자를 학문으로 배운 사람라는 걸 생각하면, “Accounting is the language of business”라는 문장의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쨌건 회계는 투자자라면 언젠가 거쳐야할 중간 단계라고 생각한다.

부기: 복식부기 가계부 후잉

전공 1년차 때 회계 원리 수업을 듣고, 이건 내 길이 아니구나 싶어서 10년 정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삶에 회계가 다시 고개를 들이미는 건, 참으로 얄궂은 일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회계에 다시 입문한 건 비교적 하드코어하다고 느껴지는데, 바로 복식부기 가계부 앱 후잉이었다. 부기는 거래를 기록하는 방법이고, 회계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그리고 후잉은 기업 회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복식부기라는 기법으로 가계부를 작성하게 도와주는 웹서비스이다 😓.

후잉을 써보면 복식부기가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투자를 위한 회계에는 이런 게 필요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후잉을 쓰면 회계 분야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대변과 차변, 부기, 회계의 5대 요소(자산, 부채, 자본, 수익, 비용), 계정,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대차평형의 원리, 감가상각, 유동성 배열, 보수주의, 분식회계, 발생주의와 현금주의 등등. 후잉에 이런 개념들이 명시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고, 나중에 후잉을 쓰면서 고민하던 것들이 회계 분야에 이미 체화된 개념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후잉은 기업의 재무회계 도구가 아니지만, 재무회계에 녹아있는 아이디어들을 훨씬 더 쉽게 배울 수 있게 해준다. 후잉에 적응하는데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회계 공부를 시작하면서 재무회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거나, 회계사 수준으로 IFRS 계정 항목들을 샅샅이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아니라면, 후잉으로 가계부를 1년 정도 작성해보는 걸로 회계 쓰기 공부는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회계를 따로 공부하고 있는 기간이 길지는 않은 편인데, 후잉은 4-5년 정도 꾸준히 써오고있다. 이전에 후잉은 복식부기 가계부이자 자산 관리 도구이다라는 글에서도 소개했지만, 현재는 거래 기록은 하지 않고 재무상태표를 만들기 위한 결산만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

복식부기로 가계부까지 작성할 시간이 없다면, 흥반장 님이 나온 팟캐스트라도 한 번 들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후잉의 개발자 흥반장님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지인들과 돈을 빌려주고 받을 때 정확하게 정산이 되지 않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회계 원리 수업을 듣고 정확한 계산을 위해 후잉을 개발하셨다고. 역시 수업 한 번 듣고 대변, 차변, 부기, 계정 이런 거 보고 기겁한 나같은 쪼쪼랭이와는 다르시다…

회계사의 회계, 투자자의 회계

길벗에서 나온 회계를 다룬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두 권이 있는데 하나는 ‘회계 무작정 따라하기’이고, 또 하나는 ‘재무제표 무작정 따라하기’이다. 회계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앞의 책을 사야한다. 회계는 넓은 의미에서 투자를 위한 회계와 좁은 의미에서 법적으로 적절한 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위한 재무회계로 나눠진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회계 원리를 공부하면서 이게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재무 회계가 아이디어보다는 정적이고 거대한 정보량이 압도 당하기 딱 좋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재무제표 무작정 따라하기’는 정확히 재무회계를 다루는 책으로, 그냥 회계 분야의 교과서 중 하나다. 투자를 위해 회계를 시작하는 사람이 볼 내용은 아니다.

권재희 님의 ‘회계 무작정 따라하기’에서는 회계 문법을 이해하는 회계 원어민과 회계 정보를 활용하는 회계 외국인을 분리해서, 독자를 철저히 ‘회계 외국인’이라고 가정하고 회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볍게 시작하기 좋은 책이다.

이런 주장을 좀 더 강화해서 사경인 님은 차변, 대변, 복식부기를 이해해야한다는 건 운전하기 위해서 용접부터 해야한다는 주장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천영록:: ‘투자자들을 위한 회계 공부는 회가사들이 하는 회계 공부와 상당히 달라야 된다.’ 란 말씀을 하시잖아요. 왜 달라야 되죠?
사경인:: 사실은 상식이에요. 상식인데, 많이 오해하시는 게, 그 말씀을 하시거든요? “너, 차변 대변은 볼 줄아냐 당연히 차변 대변, 복식부기의 원리를 알아야지 그게 회계 공부고,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그게 말이 되게 잘못됐다고 봐요. 그분들 주장은, 재무제표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그 “복식부기의 원리를 알아야지, 그걸 네가 읽고 해석할 수 있다.”인데 그게 딱, 무슨 얘기랑 똑같아져버리냐면요. 운전을 하는데,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원리를 알아야 운전이 가능하다 하면서 ‘그러니까 처음에 운전을 할 때는 용접부터 배우는 거다’ ‘용접을 해야지 차를 운전할 수 있다고?’ 되게 이상하잖아요. 차변 대변, 복식부기라는 건 ‘회사가 뭔가 거래를 이루어지면 그걸 어떻게 재무제표를 만들어서, 투자자한테 보기 좋게 보여줄 거냐.’ 품질 검사를 하는 거죠. 재무제표를 공시하기 전에 회계사들이 보고 적정하냐, 부적정하냐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이 회사랑 재무제표랑 일치한다, 내보내도 되겠다. 공시해라’ 이걸하는 거지, 복식부기의 원리는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거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재무제표를 가지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를 할지 말지, 이걸 의사결정을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차 핸들 조작이나, 액셀, 브레이크 밟는 방법, 이런 걸 공부해야지 용접이나 칠을 공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만드는 쪽에서 하는 회계 공부랑 이용하는 쪽에서 하는 회계 공부는 전 달라야지 된다고 봅니다.
회사를 이해하려 한 적 있는가? (feat 사경인 1) 중에서. 강조는 추가.

Julius Chun 채널의 사경인 님 인터뷰는 회계사의 회계와 투자자의 회계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회계 기초를 공부하기 전에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잡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를 위해 회계 공부한다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회계 기초

정말로 회계가 처음이라면 이런 단편적인 영상들도 큰 도움이 된다. 처음에 모르는 건 계속 검색하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기초적인 내용을 많이 다뤄주시는 윤정용 회계사 님의 유튜브 채널.

윤정용 회계사 님 채널은 신사임당에 나온 편을 보고 인상 깊어서 알게되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다시봐야지…

윤정용 회계사 님은 ‘직장인이여 회계하라’는 책도 쓰셨는데, 아직 읽지는 못 함.

개인적으로 회계 공부에 한 획을 그어준 기초 책은 이와타니 세이지 씨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학 입문’. 글씨도 큼직큼직하고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재무제표들 간의 관계를 배우는 데는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원제는 ‘빚을 갚으면 돈을 버는 거야?(借金を返すと儲かるのか?)’로 돈을 갚는다는 게 회계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해설한 책이다. 메인 주제도 흥미롭지만, 그 과정에서 재무제표 간의 관례를 해설해주는 게 정말 훌륭한 책. 부기에 대한 내용 없이 회계 분야의 기본 아이디어들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도 아주 좋은 책이다.

후잉에는 비용수익 탭과 자산부채 탭이 있는데 재무회계로 치면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에 해당하는 메뉴이다. 개인적으로 재무상태표는 거의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사용해왔는데,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 사이의 관계를 두루뭉실하게만 이해하고 몇 년 동안 사용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나면서 이 두 개(정확히는 자본 변동표를 포함해서)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조각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표지를 자세히 보면, 퍼즐 조각이 그려져있다.

회계의 역사: 그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회계의 주요 아이디어들을 정리해주는 한 권. 나는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회계 분야의 주요한 아이디어들을 한 번 쭉 훑어보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했던 건 대부분 이해하고 있던 내용을 반복해서 그랬던 것 같다.

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가 회계의 주요 개념들을 다룬 책이라면,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는 회계의 주요 개념들이 어디서 등장하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회계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재미있는 역사책이다. 이 책만큼 회계의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잘 설명해주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 무연고 주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 재무제표는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 감가상각은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 왜 결산은 매년 하는 것일까?
  • 기업은 왜 기업 정보를 공개해야할까? 심지어 주주가 아닌 사람들에게조차?

이런 건 다른 데서는 배우기 어렵거나, 단편적으로만 접하게 된다. 지인 분이 일본 책에서 나오는 ‘일화’는 신뢰가 떨어진다고 얘기해주시긴 했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좋은 책이다.

아직 못 읽었지만,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제이컵 솔의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도 조만간 읽어볼 예정.

회계 기초를 조금 넘어서

디피 님의 실전 스타트업 회계.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지만 이 정도 내용이 쉽게 이해된다면 기초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던 영상. 회계 외국인에게는 꽤 어려운 내용이라고 생각함. 참고로 2강이지만 0강, 1강은 회계 강의가 아님.

이미 이 분야에서 너무 유명하신 사경인 회계사 님 유튜브 채널. 채널에 영상은 별로 없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헬스케어 분식 회계 관련 시리즈는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한국경제에 나오셨던 내용은 스크랩만 해두고 아직 보지는 않음.

재무제표 모르면 주식투자 절대로 하지마라 책도 유명함.

개인적으로 앞 부분 읽으면서 ‘부실 기업 피하는 법’ 정도로 느껴져서 완독을 안 했는데, 조만간 다시 읽어볼 예정.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회계사 님의 소소하게크게 채널.

가끔씩 Dart 들어가서 같이 재무제표 보는 영상들이 있는데, 그런 영상들이 많이 도움이 된다.

최근에 알게 된 블로그. 리디북스, 컬리, 하이퍼커넥트, 무신사 등 스타트업 재무제표를 해설해주셔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상장 기업이 아니더라도 특정 요건을 갖추면 의무적으로 1년에 한 번 감사보고서를 공시해야한다. 스타트업이나 비상장 기업의 경우 이 감사보고서를 통해서 많은 정보들이 알려진다.

회계 관련 기사 연재 시리즈.

그 외에 요즘 읽고 있는 책들.

비상장 주식에 관심이 있다면, 와디즈, PSX, 엔젤리그에 올라오는 내용들도 참고할만함.

와디즈에서는 감사보고서도 공개 안 되는 비상장 기업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이 때 기업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공개하게 된다.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어떤 정보를 공개하는지, 비상장 기업의 재무제표, 밸류에이션 등 다양한 것들을 공부해볼 수 있다. 정말 땡큐하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으면 국가별 공식 공시 사이트에서 사업보고서 찾아보는 게 제일이긴 하다. 가장 신뢰할만하고 가장 가치있는 정보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기사나 뉴스도 여기서 나오는데, 실제로 사업보고서까지 열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참고로 요즘 회계 정보는 XBRL 형식(XML)으로 정형 데이터로도 제공되기 때문에 데이터 분석도 가능함. 근데 관련 정보는 거의 없기는 하다. Dart에서도 사업보고서에서 XBRL을 제공함.

그 외에 회계 관련 책들

올 설 연휴 내내 최종학 교수 님의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를 완독했다.

이 책은 회계와 현실 경영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경영 분야에 있었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해서 회계의 관점에서 풀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영 분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명했던 사건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회계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앞으로 3번은 더 읽어가며 체화해야할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순서대로 읽기 보단 가장 최신 사건들을 다룬 4권부터 읽는 걸 추천.

책에 실린 내용들은 동아비지니스에 연재한 \<회계를 통해 본 세상> 시리즈와도 겹친다(기사는 유료 구독해야 볼 수 있음).

아래는 직접적으로 회계 책은 아니지만, 재무비율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부하면서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은 책들.

슈퍼 스톡스는 PSR을 다룬 책인데, 아직 다 못 읽음.

이것도 회계랑 직접 상관은 없지만 27년간 한국 거래소에 계셨고 현재는 금융독서포럼 대표를 맡고 계신 김정수 님의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 이야기. 주요 내용은 미국 이야기로, 같은 주제로 한 책도 나와있음.

재무 정보 사이트

국내 기업 정보 / 재무 정보 잘 정리된 곳은 FnGuide가 유명한데, 유료 서비스로 써본 적은 없음. 1일 이용권도 있다고 한다.

아이투자에서는 10년치 주요 재무정보 확인할 수 있다. 유료 구독도 있는데 이용해본 적은 없음.

NICE평가정보에서 제공하는 상장온라인. 기업의 기본적인 정보들과 재무정보를 확인하는데 도움이된다. K-OTC용 페이지도 있다.

개인적으로 주로 활용하는 사이트는 모닝스타의 Key Ratios와 Financials 탭. 모닝스타의 좋은 점은 전세계 (거의) 모든 기업들의 10년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점!

Key Ratios와 Financials 탭은 구 페이지로 가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위의 주소를 직접 수정해서 사용해야한다. t 값에는 종목 코드면, region에는 지역 코드명을 넣어야한다. 한국은 kor, 미국은 usa, 베트남은 vnm, 일본은 jpn, 네덜란드는 nld, 캐나다는 can, 호주는 aus 등등. Key Ratios에서는 10년치 주요 재무정보를 볼 수 있고, Financials에서는 무료로 5년치 재무제표를 조회할 수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을 조회 가능해서 새로운 기업 알게 되면 한 번 쯤은 열어서 훑어보는 편이다.

한국의 스넥이나 미국의 시킹알파에서 (유료구독 시) 장기간의 재무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독해보진 않음. 미국은 더 길게 제공해주는 서비스도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따로 찾아보진 않음.

오늘은 끝!

추신. 월급명세서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그럼 그런 나라 노인들은 뭘 그렇게 잘해서 다들 부자들이고 우리나라 노인들은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 소득이 없냐하면 그건 나라에서 주는 연금이 있냐 없냐 그 차이입니다.
손에 잡히는 경제 2020년 5월 19일(화)


제대로 마무리를 못 지은 것 같아서, 월급명세서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자산 관점에서의 근로소득 조금 보충.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인데, 자산은 입체적이다. 부자 순위를 매긴다고 가장 현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지는 않는다. 현금은 부의 일부분만을 보여줄뿐이다. 월급 명세서의 이면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부의 다른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월급이 같은 4대 보험도 없고, 퇴직금도 없는 프리랜서 A 씨와 직장인 B 씨를 생각해보자. 실수령액이 356만원으로 같다고 할 때, 자산 관점에서 A 씨는 정말 현금 356만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지만, B 씨는 한 달에 실질적으로 439만원을 번다. 23% 차이가 난다. 당장에 손에 쥐어지는 현금은 차이가 없지만, 1. 퇴직시점, 2. 국민연금 수급 시점이 되면 이 차이는 “실질적인 차이”로 되돌아온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이러한 차이를 매우려면 직장인보다는 더 많인 돈을 받아야만 하고, 따로 국민연금을 적립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영업자 C 씨의 손에 쥐어지는 356만원은 계산법이 또 다를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거의 보이지도 않고, 비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국민연금을 최대한 납입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 현금 유입을 최대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 현금으로 국민연금 이상의 가치를 재생산해낼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차이는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드러난다.


현금과 퇴직연금의 차이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자. 현금, 국민연금, 퇴직연금은 모두 자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같은 돈은 아니다. 이 돈 주머니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퇴직연금을 받는 IRP 계좌의 경우 글에서 다양한 세금 혜택이 주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 계좌를 연금으로 받기 전에 해지한다면, 지금까지 받은 혜택에 대한 패널티를 물어야한다. 더 나아가 이 결정은 비가역적이다. 한 번 IRP를 깨고 나면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퇴직연금이라는 돈 주머니의 특징이다.

즉, IRP는 애시당초에 소비에 유리한 계좌가 아닌 것이다. 소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돈 주머니를 변경하는 데 따른 마찰비용(Friction cost)을 고려해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선택이 더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소비를 위해 마찰비용을 감수하는 게 거의 확실하게 마찰비용만큼 손실을 보는 일이다. 소비를 위해 별도로 현금을 저축한다면, 이 마찰비용만큼 고스란히 내 계좌에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프리랜서 C 씨는 매월 400만원을 받지만 4대 보험이나 퇴직연금은 없다. 앞서 이야기한 직장인 B 씨는 매월 356만원을 번다. B 씨와 C 씨를 비교할 때 B 씨가 사실은 더 많이 번다는 주장은 일견 황당해보일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정신승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떤 것이 정신승리인지, 실질적 차이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정신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의 주가가 떨어져서 추가 매수를 할 때 싸졌다는 게 이유라면 물타기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안전마진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자산에 있어서는 이 정신의 영역이 바로 타임 호라이즌이다. 타임 호라이즌이란 투자의 기간을 얼마나 길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투자 기간이 1년 정도라고 생각해보자. 이 기간 동안에 B 씨가 비유동자산(퇴직연금과 국민연금 등)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어차피 현금이 더 많이 들어오고 소비에 여유가 있는 C 씨가 실질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타임 호라이즌을 30년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C 씨는 30년간 총 144,000만원의 자산을 벌지만, B 씨는 152,280만원을 번다. 더욱이 퇴직연금이나 국민연금으로 되돌아오는 금액은 납입한 금액 이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아가 임금상승률이 같다고 가정하면 이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여기서의 차이는 단지 투자를 고려하는 기간이 1년이냐 30년이냐의 차이밖에 없다. 같은 현금이 손에 쥐어지는 프리랜서 A 씨의 경우 128,160만원으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타임 호라이즌이 1년인 사람에게 B 씨가 C 씨보다 더 돈을 많이 번다는 명제는 정신승리지만, 타임 호라이즌이 30년이라면 이 명제는 둘의 실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멀리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물론 이건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이지 절대적인 결과는 아니다. C 씨가 더 나은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투자를 잘해서 더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 호라이즌을 길게 잡으면, 상한을 높이는 것보다, 하한을 높이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월급명세서가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 자산 관점에서의 근로소득

연봉이 1억이라도 실수령액이 600만원 언저리라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듣게 되는 것 같다. A씨의 연봉이 1억이라고 해보자. 사람인의 연봉 계산기에서 A 씨의 실수령액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6,580,153원. 2018년 기준 직장인 1858만명의 평균 급여는 3647만원이며, 연봉 1억이 넘는 직장인은 80만명으로 전체 직장인의 4.3%라고 한다.1 연봉 1억이면 직장인 중에서는 분명 상위권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 경계선 상에 있는 사람의 통장에 매달 찍히는 금액이 658만원이다. 많다면 많지만, 막상 엄청 많아보이지도 않는다.

1억을 단순히 12달로 나누면 833만원이 된다. 833만원과 658만원 사이에는 175만원이 있다. 이 175만원이 바로 표에 나타나있는 공제액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국민연금 218,700원, 건강보험 274,580원, 장기요양 28,140원, 고용보험 65,860원, 소득세 1,059,910원, 지방소득세 105,990원이 이에 해당한다.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만 100만원이 넘어가는데, 말이 100만원이지 연봉 3000만원 정도 받는 사람의 실수령이 224만원 정도라는 걸 생각하면 어마무시한 금액이다. 퍼센트로 계산하면 대략 14% 정도이니 이걸 보면 직장인 월급은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현실로 와닿는다.

하지만 실수령이라는 게 적절한 숫자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제에 포함되는 항목들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고용보험, 소득세(+ 지방소득세)가 있다. 이 중에 건강보험, 장기요양, 고용보험은 비용성 항목이다. 그럼 이제 남는 건 국민연금과 소득세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국민연금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연금이다. 예를 들어 B 씨는 어떤 이유로 국민연금을 내지 않는다. 이 경우 B 씨의 실수령액은 A 씨가 내는 국민연금만큼 많을 것이다. 1년을 놓고 본다면 A 씨가 국민연금을 내서 얻는 실익은 전혀없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은 비용인 것이다. 하지만 생애주기 전체를 놓고 본다면, A 씨는 65세 이후에 국민연금으로 납입한 금액을 납입한 금액 이상으로 돌려받을 것이고, B 씨는 받을 돈이 없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연금이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A 씨와 B 씨 사이에는 국민연금 이상의 차이가 벌어진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의 절반은 회사에서 내야하기 때문이다. 즉 A 씨의 공제액은 218,700원이지만, 실제로 A 씨가 국민연금에 납입하는 금액은 437,400원이다.2 A 씨가 따로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미래 소득을 위해 437,400원이 저축되고 있는 셈이다. 단지 유동성이 없을 뿐이다.

내가 실수령이 적절한 숫자인지 의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의 자산은 크게 유동자산과 비유동자산으로 분류한다. 유동자산은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의미하며, 비유동자산은 1년 이내에 현금화할 수 없는 자산을 의미한다. 자신은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유동자산이 아니라해서 그 자산이 자산이 아닌 것은 아니다. 실수령액은 현금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현금의 감소(공제액)로 처리해버리는데, 발생주의 관점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비유동자산 계정에 쌓이는 돈이다. 심지어 납입하는 금액의 2배가 쌓인다.

다음으로 소득세를 보자. 앞서 소득세가 대략 월급의 14% 정도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월급에서 공제하는 금액은 정확하지 않다. 대충 적당히 떼어간 다음에 연말정산을 통해서 정확한 금액을 계산한다. A 씨가 내야하는 세금은 소득세율표로 계산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소득세율은 다음표와 같다.

이 표를 A씨의 소득세가 35%라고 생각했다면, 소득세에 대해서 조금 더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나온 소득세율은 한계세율이라서, 구간별로 따로 계산해서 더해줘야한다. A 씨의 경우 1200(만원)*0.06 + 3400*0.15 + 4200*0.24 + 1200*0.35=2100 즉 2,010만원이 된다. 이걸 평균세액 혹은 산출세액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봉이 1억이라고 1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1억원에서 소득공제를 빼고 그 금액에 대해서 세금을 계산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500만원 정도가 소득에서 공제되기 때문에 1억원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 경우는 없다. 구간별 실효세율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못 찾았는데 2013년 기준 1억-1억 천만원 구간의 실효세율은 10% 전후로 정도로 예상된다.3 10%로 계산해보면 83만원이 된다. A씨가 납입한 소득세는 116만원이었으니 33만 5천원의 차액이 발생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연말 정산을 통해서 400만원 정도의 금액을 돌려받게 된다.

연말정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자료를 참고.

급여명세서에는 보여주지 않는 중요한 항목이 하나 있다. 바로 퇴직연금이다.4 월급명세서에 보이지 않아서 퇴직연금을 갑자기 생기는 목독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법적으로 퇴직금은 기업에게는 부채로 적립된다. 그 말은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나중에 돌려받아야할 돈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갑자기 생기는 목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있는 돈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최종 금액의 유불리와는 무관하게 재직중에 정산이 이루어지는 DB형보다 DC형 연금을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퇴직연금을 급여명세서에서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미리 금액이 확정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의 1/12를 계산해서 최소 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 A 씨의 경우 833만원을 12달로 나누면 대략 70만원 정도가 된다.

이제 A 씨의 실수령액이 아니라, 자산 관점에서 A씨의 월급을 다시 계산해보자. 현금으로 들어오는 돈은 그대로 6,580,153원(ㄱ)이다. 국민연금은 직접 납입한 돈과 회사가 납입한 돈을 합쳐서 437,400원(ㄴ)이다. 다음으로 실효세율로 계산한 소득세를 833,333원이라고 하면 332,567원(ㄷ)의 차액(돌려받을 돈)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퇴직금은 최소 694,444원(ㄷ)이다. 이를 모두 더하면 ㄱ+ㄴ+ㄷ+ㄹ=8,044,564원이 된다. 1억을 12달로 나눈 833만원보다 조금 적다. 계산해보면 자산 관점에서는 실수령액 대비 22.22%가 많고, 계약 연봉보다 3.5%  적게 받는 셈이다.


연봉이 5,000만원인 C 씨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연봉이 5,000만원 정도면 사실상 실효세율이 높지 않다. 여기서는 3% 정도를 가정한다.

  • 실수령액 = 3,560,106원
  • 국민연금 = 365,980원
  • 소득세(실효세율 3%) 차액=116,520원
  • 퇴직연금 = 296,675원

이를 모두 더해주면 4,339,281원이 된다. 이는 실수령 대비 21.88% 많고, 계약 연봉 대비는 4% 적은 금액이다. 실수령액을 전부 소진해도 일을 하고 있으면 사실 100만원 정도의 자산이 쌓이고 있는 셈이다. (실수령액 기준) 저축성향이 33%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매월 3460106*0.33+365980+116520+296675, 약 191만원을 저축하는 셈이다.


실수령액은 기업 관점에서 보면 현금흐름에 해당한다. 현금흐름은 철저히 현금에 기반한다. 하지만 현대적 회계에 있어서 현금흐름이 보조적 지표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회계는 비단 부작용이 있더라도 철저히 발생주의에 기반한다. 그리고 그게 더 정확하다. 개인적으로 제무재표로 보면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가 메인이고, 현금흐름표는 보조하는 역할을 하지 그 반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실수령액이 아니라 자산 관점에서 월급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걸까?

첫 번째로 잘못된 정보로 인한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을 수 있다. 회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기업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의사결정에 근거를 제공하기 위함이고, 기업 외부의 (예비) 투자자에게는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는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산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시 C 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C 씨는 첫 직장에서 연봉 5,000만원에 3년간 일하고 퇴직연금으로 1,500만원을 받았다. 이름도 처음 듣는 IRP에 퇴직연금을 받아서 바로 깬 다음에 1개월 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5개월 정도를 쉬고, 다시 취업한다.

1,500만원을 여행을 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돈이 갑자기 생긴 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적립된 저축이라고 생각한다면, 소비에 앞서 이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서 미리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좋다. 법적으로 현재 퇴직연금은 IRP로 받게 되어있는데, IRP를 계속 운용해서 퇴직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여러가지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IRP에 추가 납입하는 경우도 많은데, 굳이 퇴직소득세를 내가며 IRP를 해지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퇴직연급을 해지하기보다는 따로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기회 비용을 생각해보자. 기존 연봉을 기준으로 실수령액으로 휴직 기간 동안의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면 저축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실수령액 기준) 저축성향을 33%로 계산한다면 685만원을 저축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셈이다. 실제로는 첫 1개월 간 여행비로 1,5000만원, 나머지 5개월간 생활비로 1,000만원을 쓰면, 총 2,500만원이 마이너스가 된다. 여기에 저축할 수 있었던 금액을 더하면 3,185만원이 된다. 여기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도 쌓이지 않으므로 397만원을 더하면 총 기회비용은 3,582만원이 된다. 단, 6개월만에 3,582만원 차이가 벌어진다. 여행비를 빼더라도 같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과 저축을 못한 685만원이 아니라, 2천만원 가까운  차이가 벌어진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장기간 휴직을 할 수가 없어진다… 😰

두 번째로 근로소득자로서 의외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바로 이전 글 저축, 투자, 그리고 사건: 개인의 자산은 어떤 궤적으로 불어날까에서 시나리오를 만들 때 저축 금액을 연 2천만원으로 잡았다. 2천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글에서 제시한 2천만원은 모든 순자산 증가를 포함하는 금액이다. 이 글의 A 씨와 C 씨의 경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 계산해도 각각 1,359만원, 795만원이 된다. C씨의 경우 월급(실수령액)의 33% 정도를 저축하면 1,409만원(ㄱ), 소득세 환급 139만원(ㄴ), 퇴직연금 356만원(ㄷ)을 더하면 1,904만원이 된다. 국민연금은 유동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제외시켰지만, 이것만으로도 매년 거의 2천만원의 순자산이 증가한다. 이 금액의 차이는 자산 관점에서는 실질적인 차이이다. 순자산 2천만원 증가는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몇 백만원으로 주식 투자하면서 투자 수익률에 목맬 필요가 없다. 투자나 투자수익률은 그 다음 문제이다.5


  1. 국세청이 밝힌 지난해 억대 연봉자 수는, 경향신문, 2019. 12. 27. 
  2. 국민연금 납입액은 소득월액의 9%로 정해지며 최대 소득월액은 486만원이다. 따라서 1억원을 버는 A 씨는 매월 최대 금액을 납입하는 셈이다.
  3. 연봉이 1억원에 가까워지면 소득공제와 세액공제가 정말 중요해지는데, 받을 수 혜택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4. 사람인 연봉 계산기에는 퇴직금 포함 기능이 들어있다. 
  5. 투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산이 늘어났을 때 자산의 증가속도(ROE)를 높게 유지하는 역할이다. 수익률이 고정된 저축의 ROE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떨어진다. 하지만 투자 자산이 일정 수준이 되기 전에는 저축이 투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저축, 투자, 그리고 사건: 개인의 자산은 어떤 궤적으로 불어날까

투자에 있어서 종잣돈이나 투자 수익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투자를 시작하기 위해 1억원의 종잣돈을 모았다고 해보자. 1억원을 똭 모으고 나면 이제는 주식 투자만 하면 되는 건가? 종잣돈을 모았으니, 투자 수익률만 잘 내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A씨는 0기 시점에 원금은 1억이고 복리 수익률 7%, 투자 기간을 30년이라고 해보자. 약간의 싸이클을 가미한 자산 추이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단위는 백만원, 만원 아님.)

30기의 자산은 약 9억 2천만원이 된다. 오직 1억원으로만 투자한 성과이며 추가적인 투자금의 투입은 없었다. 이 정도면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단순히 저축만 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어떨까? 투자를 전혀 하지 않고 저축만 매년 하는 B씨를 생각해보자. 이자는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매년 2,000만원씩 자산이 늘어나기만 한다. A씨(투자 7%)와 B씨(저축)의 경우를 그래프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30년간 대부분의 구간에서 B씨가 앞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씨가 B씨를 확실하게 넘어서는 시점은 약 28기이다. 더욱이 이자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위의 그래프보다 더 유리해진다. 저축 금액에 대해서 2%의 이자 수익을 가정해보자.

이 경우 30기의 자산은 약 10억원이 되며, A 씨는 단 한 번도 B 씨의 자산을 앞서지 못 한다. 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충분한 금액을 단순히 저축하기만 해도 큰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단순한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에 변수들을 조정해서 서로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 종잣돈이 수십 억 쯤 되지 않으며, 2. 투자 기간이 충분히 긴 경우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투자가 아니라 저축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멍거: 저축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도와줄 방법이 없습니다.
버핏: 어린 시절부터 저축 습관을 키워야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2015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Q&A 중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저축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이다. 매년 2,000만원씩 저축하면서, 7%의 수익률을 내는 C씨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단순 시뮬레이션으로 보면 30기의 자산이 30억원에 달한다. 투자만 하거나(A씨) 저축만 하는 경우(B씨) 보다 약 3배 정도 큰 금액이 모인다. 또한 그래프만 보더라도 단 한 번도 A씨나 B씨에 뒤쳐지는 경우가 없다. 또한 B 씨의 경우는 순 자산이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6번 발생하는데, C 씨의 경우는 3번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C씨는 투자 수익률이 낮은 해에도 2,000만원의 저축이 있기 때문에 순자산은 거의 항상 증가하기만 한다. 후반부의 손실도 투자 금액이 커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전 글 ‘자산 형성기에는 투자보다 저축이 중요하다‘와 ‘자산 형성기의 투자 수익률과 순자산 증가‘에서도 주장했던 바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자 수익률이 아니다. 순자산 증가율이 투자 수익률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저축(혹은 새로운 투자금 투입)은 투자 손실에 대한 순자산 감소를 방어해주고, 투자 수익이 날 때는 순자산 증가를 극대화한다. 그래서 저축은 투자와 함께 갈 때 그 가치가 더욱 빛이난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버는 저축이나 투자보다 사건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큰 돈을 버는 경우를 말한다. 사업이 단기간에 대박이 날 수도 있고, 로또 분양에 당첨되거나, 도박을 해서 한 방이 터지거나, 복권에 당첨이 되거나, 스톡옵션이나 비상장 주식의 평가 가치가 크게 상승하는 경우가 그렇다.

D씨는 오직 사건을 통해서만 돈을 벌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매년 1,000만원 정도의 돈을 투입한다. 적당한 상상력을 통해서 사건을 임의로 만들어보자. D씨가 6기에 2억을 벌었다고 가정하면, 직전년도에 넣은 돈 1,000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20배의 수익이고, 1기부터 5기까지 넣은 돈을 기준으로 하면 투자금 대비 4배의 수익이다. 14기에는 3억원을 버는 사건이 발생했다(전기 기준 30배, 투자금 대비 4.3배). 그리고 22기에 5억원을 버는 사건이 발생했다(전기 기준 50배, 투자금 대비 6.3배).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자.

돈은 꾸준히 줄어들지만 적절한 시기에 사건이 발생하기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D 씨의 최종 자산은 8억원이지만, 사건의 크기와 확률에 따라서 D씨의 자산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최종 자산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사건을 추구할 때도 저축은 여전히 강력한 방어 수단이 되어줄 수 있다. E 씨는 D 씨와 완전히 같은 방식의 투자를 하지만 매년 2,000만원을 투자한다. 따라서 D 씨는 매년 사건을 위한 투자로 1,000만원이 줄어들지만, E 씨는 사건을 위한 투자를 하고도 1,000만원이 늘어난다.

E 씨의 30기 자산은 14억원이 된다. D 씨와는 정확히 저축 금액 6억원 만큼 차이가 난다. 사건을 통해서 얻은 수익이 없다면 E 씨는 -2억, D 씨는 4억의 자산이 남는다. 결국 모든 경우에 하한선은 저축이 결정한다.

이번엔 저축과 투자 그리고 사건을 모두 병행하는 F 씨를 생각해보자. 저축과 투자를 병행하는 C 씨와 비교하는 경우 실질적인 저축액은 더 적지만 사건을 통해서 자산이 빠르게 늘어나고 이를 다시 다시 투자해 자산의 증가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따라서 사건이 처음 발생한다고 가정한 6기 이후에는 모든 구간에서 F 씨가 C 씨를 앞선다. 반면에 사건과 저축을 조합한 E 씨의 경우 대부분의 시기에 C 씨에게도 뒤쳐진다. 결과적으로 F 씨의 30기 자산은 50억이 된다.

즉, 사건은 독립적으로 추구해야할 것이 아니라, 저축, 투자와 병행되었을 때 순자산 증가분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부자가 되기 위한 전략: 투자, 그리고 사건의 가능성을 열어놓기‘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가끔 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 저축을 과소평가하거나 사건을 과대평가 하는 경우를 만나곤 한다. 혹은 투자를 단기간에 자산을 몇 배 불릴 수 있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러한 차이가 투자 기간과 투자 목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투자 기간이 지나치게 짧은 경우 단기간에 큰 수익률을 올리는 게 중요해진다. 따라서 종잣돈과 투자수익률이 투자 결과를 결정하는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즉, 단기 투자자의 투자 성과의 함수는 f(종잣돈, 투자수익률)이 된다. 짧은 기간의 투자 수익이란 종잣돈 * 투자수익률으로 단순화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까 투자 기간이 짧다면 말이다. 심지어 이런 경우는 대부분 투자 목적이 순자산의 극대화인 경우보다 소비의 극대화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큰 수익을 내더라도 순자산이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에 충분히 긴 시간(최소 10년에서 길게보면 평생)에 걸쳐 순자산의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저축, 투자수익률 그리고 사건이 모두 중요하다. 장기투자자가 투자 과정에서 충분한 저축을 하고 있다면 종잣돈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되어있다. 따라서 장기투자자의 성과함수는 f(투자기간, 저축성향, 투자수익률, 사건의 발생확률; 종잣돈)이 된다. 여기서 투자수익률은 단기 투자자가 기대하는 숫자보다 훨씬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 글에서 기준이 되는 7% 수익률도 낮은 수익률은 아니지만, 단기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수익률보다는 훨씬 더 합리적인 수익률이다.

저축, 투자, 사건 이 3가지가 장기간에 걸쳐 적절히 조합되었을 때 단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시간이고, 시간을 이해하면 합리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혹은 충분히 합리적인 미래 예측을 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경우를 한 번에 살펴보자(아래는 로그 스케일).

“돈을 잃는 것보다 기회를 잃는 게 낫다”

얼마 전 투자 중인 회사에서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다른 근거없이 조바심이 나는 상태였다. 좋아하는 회사였고 기회가 있다면 더 투자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문제는 앞으로 몇 달간 크게 돈이 나갈 일들이 겹쳐있어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침 지인 분들과 모여서 유상증자에 참여할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과적으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주 정교한 밸류에이션 도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차분하게 바라보니 해당 기업의 소비자 유입 경로나 경제적 해자가 불투명해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투자를 했기 때문에 기업이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이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투자를 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합리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기회라는 것은 오묘하다. 좋은 기회라는 것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를 잡으라”는 충고는 유효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회는 한시적이고 베타적이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기회는 대부분의 경우 한시적이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특성이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중요한 건 한시성이 아니라 이 기회가 정말로 좋은 기회인가 하는 점이다. 가끔씩은 한시성 자체가 기회를 돋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홈쇼핑은 정확히 그러한 기회의 비합리성에 호소하는 매체이다. 따라서 한시성만으로 판단하면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한시적이거나 드문지가 아니라 미래에 이 결정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결과의 확률 분포가 나에게 유리한지이다. 나아가 기회는 베타적이라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다른 기회들은 포기해야한다. 잠시 후에 명백하게 더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케빈 달리는 돈을 잃는 것보다 기회를 놓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잭 슈웨거: 펀드 설립 후 심각한 베어마켓을 두 번이나 겪으시면서 매수 포지션 중심의 익스포저로 어떻게 손실을 제한하실 수 있었던 거죠?
케빈 달리: 저는 다양한 경기지표를 주목합니다. 그중에는 한 주 동안의 철도물동량처럼 남들은 잘 모르는 자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표가 경기위축을 나타낼 때는 익스포저를 줄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면 포지션의 거의 대부분을 현금화합니다. 덕분에 2002년과 2008년의 베어마켓을 견뎌내기가 쉬웠습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조심스러운 접근방법이 오히려 수익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상당한 주식을 매도했는데 연방준비위원회가 Q2(2차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주가는 급등했습니다. 2010년 13.3%의 순수익을 올렸지만, 경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았더라면 더 높은 수익을 올렸을 겁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돈을 잃는 것보다는 기회를 놓치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헤지펀드 시장의 마법사들: 케빈 달리 인터뷰, Jack D. Schwager 저

질투심과 후회는 판단을 그르치게 만든다. 사후적인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하는 시점에서)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결과의 확률 분포이다. 평가는 이 판단에 대해서 해야한다.


워런 버핏은 투자를 삼진 아웃 없는 타석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해 미국 케이블방송 HBO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워런 버핏이 된다는 것’(Becoming Warren Buffett)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버핏이 전설적인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쓴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을 인용하는 구절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가 타율 0.406을 기록한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는 다시 등장하지 않고 있다.

버핏은 테드 윌리엄스가 스트라이크 존을 77개로 나눈 후, 오직 한 가운데(sweet spot)로 들어오는 공만 노렸다고 말한다. 테드 윌리엄스는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을 치면 4할의 타율이 가능하지만, 바깥쪽 낮은 코너로 들어오는 공을 치면 타율이 0.235로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만 끈기있게 기다렸다. 결과는 전설이다. 테드 윌리엄스는 19년 동안 2292게임에서 통산타율 0.344를 기록했고 1966년 93.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버핏은 투자는 야구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다. 삼진아웃이 없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방망이를 있는 힘껏 휘두르면 된다.

만약 사람들이 야유하듯이 “휘둘러, 이 멍청아!”(Swing, You Bum!)라고 외치면 버핏은 무시하라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치고 싶은 공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다.

한 가운데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설령 그런 기회가 평생에 단 20번 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월등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버핏과 멍거는 말한다.

“한 가운데 스트라이크만 노려라.”

버핏이 ‘4할 타자’ 포스터를 사무실에 걸어둔 이유 – 머니투데이 뉴스

그리고 역시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선수 시절 나는 항상 이런 점에 대해 불평했었다. “스니드나 호건 같은 골프 선수들을 좀 봐. 그들은 저기서 내내 공을 때리는 연습을 하잖아. 나는 운이 좋아야 하루에 타격 연습을 15분 정도 할 수 있을 뿐이야. 만약 매일 한 시간 씩 타격 연습을 한다면 나는 4할5푼도 칠수 있어.” 물론 그건 좀 과장된 얘기지만 그런 열의는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타격의 과학 50-51p, 테드 윌리엄스

조바심이 난다는 건 위험한 신호다. 계속 공부하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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