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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과잉과 개인을 위한 정보 관리 도구: 버니바 부시의 메멕스(Memex)는 완성되었는가?

이 글은 2016년 5월 19일에 다른 블로그에 공개했던 글을 옮겨온 것이다.


1945년에 버니바 부시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심지어 한정된 분야에서조차, 첨단 기술을 받아들이려 하는 진지한 연구원들이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이전 달에 했던 노력의 결과가 얼마인가를 평가한다면 움찔 놀라 도망같 수도 있다. 멘델의 유전학 법칙은 유전학의 시대가 열리기까지 한 세대 정도 잊혀졌다. 왜냐하면 멘델의 생각을 담은 출판물을 이해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찮은 많은 것들 속에 파묻혀 정작 중요한 업적이 잊혀지는 불행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는 출판이 오늘날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된 것을 유용하게 하는 우리의 현재의 능력을 출판이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경험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미궁을 뚫고 빠져나가 중요한 아이템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과 동일하다. (중략)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다루고 그것을 기록에 삽입함으로써, 우리는 전보다는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막대하게 기록을 확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 쌓여진 기록도 거의 참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학적 연구의 목적으로 단순히 데이터를 추출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습득한 지식을 상속하여 생기는 이득의 전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사용하는 주 활동은 선택이고, 여기서 우리는 실제로 머뭇거리고 있다. 수많은 좋은 생각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것들은 경험에 바탕을 둔 좋은 생각이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측적 형태의 돌벽 안에 담겨있다. 그러나 만약 어떤 학자가 단지 일주일간 열심히 조사해서 결과를 얻는다 해도, 그가 한 종합은 현재 상황을 따라같 수 없을 것이다.

멀티미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252p, 버니바 부시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미래의 도구인 메멕스를 상상한다.

색인 체계보다 연상 작용에 의한 선택은 아직 기계화가 덜 되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신이 연상 경로를 따라가는 속도와 유연성이 같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저장소에서 되살린 항목이 영속적이고 투명성을 지녔다는 면에서 정신을 결정적으로 능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개인이 사용하기 위한 미래 장치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일종의 기계화된 개인 파일과 도서관 같은 것이다. 그 이름은 생각나는 대로 메멕스(memex)라고 지었다. 메멕스는 개인의 모든 책, 기록, 커뮤니케이션을 저장하는 장치이고, 신속하고 융통성있게 기록을 찾아볼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기억을 확장하게 하는 근본적인 보완책이다.

— 멀티미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269p, 버니바 부시

버니바 부시의 메멕스는 인간의 기억을 확장하는 도구이다. 하지만 동시에 메멕스는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이다.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이 도구를 통해 연구자는 첫째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고, 둘째 빠르게 저장된 데이터를 탐색할 수 있으며, 셋째 저장된 데이터들을 연결할 수 있다. 메멕스에 관심이 생겼다면 버니바 부시의 우리가 생각하는대로(As We May Think, 1945)의 전문을 읽어보길 바란다.1

이 아이디어는 테드 넬슨에 의해 발전 되고 팀 버너스 리에 의해 결실을 맺은 하이퍼링크의 원조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흥미로운 복수의 데이터를 연결한다는 개념은 국소적인 지역보다는 훨씬 더 광역적인 범위에서 발전해왔다. 인터넷은 처음에 웹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처럼, 거미줄처럼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이러한 현재에 거꾸로 접근해보자. 지금은 1945년이고, 여기에 두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의 정보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라는 책의 247p의 5번째 줄에 있는 문단과 라는 책의 52p 12번째 줄의 문단을 함께 묶어두고 싶다.

물리적인 두 권의 책 사이의 정보를 연결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서 간접적인 방법으로 의 상대적인 위치를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완전하다. 두 책을 동시에 접근할 수 있어야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방법으로는 스크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스크랩이라는 방법은 각 문서의 내용을 독립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원래 두 책이 가진 고유한 맥락들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성립한다. 두 책에 대상 문서의 내용을 필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스크랩만큼은 아니지만 한 권이 가진 고유의 맥락을 소실시켜야만 한다. 세 가지 방법 모두 충분히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불완전하고 매우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연결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백개라면?

이러한 맥락에서 인터넷 상의 다양한 형식들이 문서들이 서로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매체에서는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잠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자.

정보 과잉은 디지털 매체와 연관지어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퍼블리싱 기술의 등장과 함께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버니바 부시가 주장하듯이 정보 과잉은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버니바 부시는 (인터넷이나 개인용 컴퓨터가 발명되지도 않았던) 1945년의 글에서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도 뻔뻔스럽게 이야기한다. 버니바 부시는 정보 과잉을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는 출판이 오늘날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된 것을 유용하게 하는 우리의 현재의 능력을 출판이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 과잉은 디지털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 1945년에 비해서 2016년에 생산되는 정보의 양은 비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동시에 기록된 것을 유용하게 하는 우리의 현재 능력(our present ability to make real use of the record) 또한 1945년에 비해서 오히려 더욱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은 세 가지 방향에서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메타데이터 데이터베이스, 하이퍼링크, 검색엔진.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저장 능력의 발전을 등에 업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런 구도를 그려볼 수도 있다.

정보의 양과 기록된 것을 유용하게 하는 능력 간의 관계

정보의 절대적인 양이 아무리 빠르게 늘어나더라도 기록된 것을 유용하게 하는 능력이 더 빠르게 향상되어 간다면, 정보 과잉은 해소된다. 그리고 정보 과잉은 해소되어가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어 하나만 넣어봐도 알 수 있다. 어떤 키워드가 담겨있는 문서가 수십만개, 수백만개가 있어도 구글은 그 중에서 가장 유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들을 찾아준다. 물론 검색을 할 때는 검색엔진의 성능과 동시에 검색엔진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도구를 사용하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정보에 접근하는 게 가능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과거에는 2개의 책의 특정한 문단 사이에 경로를 만드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온라인 상에서는 자유롭게 문서 사이를 횡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멕스는 도래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인터넷은 광역적이다. 국소적인 문제는 작아서 해결하기 더 쉬워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무차별적으로 광역적인 문서 인덱스 시스템과 일관된 네트워크 상의 URL에 기반한 하이퍼링크를 통해 광역적인 정보 조직화와 검색은 가능해졌지만, 버니바 부시의 메멕스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메멕스가 온전히 개인을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사용하기 위한 미래 장치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일종의 기계화된 개인 파일과 도서관 같은 것이다. 그 이름은 생각나는 대로 메멕스(memex)라고 지었다. 메멕스는 개인의 모든 책, 기록, 커뮤니케이션을 저장하는 장치이고, 신속하고 융통성있게 기록을 찾아볼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기억을 확장하게 하는 근본적인 보완책이다.

여기서 개인은 놓쳐지기 쉽다. 광역적인 공간의 정보혁명의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검색 가능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보라는 것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있다. 구글에서 검색 가능한 것은 단지 인덱스된 정보 혹은 완전히 공적인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는 정보일 뿐이다. 사적인 영역부터 공적인 영역까지 그 사이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며, 웹이 아닌 네트워크 위에서 이러한 정보의 양상은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이 거대한 공적 네트워크를 모든 정보가 저장된 공간으로 보는 것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다. 개인에게 있어서는 메신저에서 타인과 나눈 대화조차도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보는 공개되어있지 않으며, 공개될 수 없으며, 공개되어서도 안 된다. 메멕스의 완성은 공적 네트워크의 완성과 같을 수 없다. 버니바 부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하는 끈은 손가락으로 쉽게 누률 수 있도록 소매에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순간에 순간적으로 누르면, 사진이 찍힌다. 일반 안경의 한쪽 렌즈 윗부분에는 가는 선의 정사각형이 있어, 그것을 통해 보면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다른 형태로 보인다. 물체가 그 정사각형 안에 보이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초점을 맞춘다. 미래의 과학자는 실험실이나 현장, 또는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모든 순간에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 찰칵 하는 소리는 둘러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터무니없는 상상인 것일까? 환상적인 것은 단지 셔터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원하는 만큼 많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멀티미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256p, 버니바 부시

1945년 Life Magazine에 기고된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중에서

1945년 Life Magazine에 기고된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중에서

1945년에 버니바 부시는 없는 것을 상상했다. 버니바 부시는 과학자였고 그의 상상력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아날로그적이다. 디지털 시대의 선언문과도 같은 클로드 섀넌의 ‘통신의 수학적 이론’2이 발표되기 전이었다. 아날로그의 디지털의 차이만 있을 뿐 그의 상상력은 현실에 구현되었다. 우리는 이마에 카메라를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상시 휴대하며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경우가 있다.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세미나를 들으며 TV 화면에 출력되거나 스크린에 투사되는 강의 슬라이드를 사진으로 찍는다. (불행히도 버니바 부시가 예견은 빗나갔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웅장하게 가짜 셔터 소리가 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촬영은 어떤 면에서는 무례하고, 심지어 비효율적으로까지 보인다. 강연자가 슬라이드를 따로 공개하기도 하고, 공개하지 않는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강의 자료를 받는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강연을 듣는 사람이 슬라이드를 촬영하는 행위는 강의 자료의 본래적인 형태를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일이다. 이러한 왜곡은 이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오직 자신에게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장면만을 촬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수집 방식은 개인들에 의해, 각각의 개인에게만 의미있는 맥락을 만들어낸다. 즉, 우리가 정보라고 말하는 것들은 공적인 자신의 본래적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개인들에 의해 각 개인들의 새로운 맥락에서 전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이렇게 바라본다면 공적인 정보로서 발표자가 작성한 완성된 슬라이드와 사적인 정보로서 개인이 촬영한 파편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메멕스는 세상의 모든 (공개된) 정보가 저장되고 인덱스된 거대한 네트워크 기반 데이터베이스 그 자체가 아니다. 단지 그 데이터베이스는 메멕스에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온전히 개인의 맥락에서, 개인에 의해서, 수집되고, 분류되고, 연결된 정보 시스템이어야만 한다. 즉, 세상의 기억이 아닌 온전힌 인간의 기억을 확장하게 하는 근본적인 보완책으로서의 단일체로서의 완전한 메멕스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개인 정보 관리 도구와 특정 포맷의 자료를 관리하는 도구들은 파편화된 형태로 독립된 어플리케이션들로 존재한다.

현재 상황을 앞선 예를 가지고 이야기해보자. 마치 버니바 부시가 상상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강의 중간중간에 흥미로워보이는 슬라이드를 사진에 담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진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스마트폰 안에서 머문다. 클라우드나 가져오기를 통해서 컴퓨터 위에 올라오더라도, 이 사진들을 적절한 형태로 엮는 것은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사진은 사진 고유의 포맷을 가지며, 이 사진들을 하나의 정보로 엮기 위해서는 문서화를 해야한다. 그리고 이 문서는 사진 파일을 포함하거나, 레퍼런스해야한다. 사진 파일을 포함하기 위해서 워드프로세스 같은 것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워드 프로세스들은 고유의 포맷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하나의 문서들을 포함한 문서 더미 안에서 이 문서 안의 컨텐츠를 검색한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레퍼런스를 한다면, 사진의 파일 위치만 달라져도 문서에서 많은 정보가 소실된다. 또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기본앱은 사진에 대한 직접적인 어노테이션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개인위키, 에버노트(Evernote), 데본씽크(Devonthink)와 같은 도구들이 이 문제들에 대한 독자적이고 편협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나마 이 도구들이 메멕스의 이상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개인의 정보 데이터베이스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화하고, 검색하고, 연결할 수 있는 도구, 메멕스.

이렇게 얘기해보고 싶다. 2016년에 누가 아직도 메멕스의 꿈을 꾸고 있는가? 그 목표도 현상도 불완전하더라도 정보를 수집하고 조직하고 관리하고 탐색하고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꿈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구글은 비유하자면 외부 장치이다. 기억장치로서의 뇌를 확장하고 보완하는 도구로서의 컴퓨터를 완결짓는 것은 구글이 아니다. 그것이야 말로 메멕스라는 꿈의 완성인 동시에, 독자적으로 (어떤 방법이나 도구를 사용했건)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나가는 개인들의 노력이 향하는 진정한 방향일 것이다.

인간이 아득하게 지나간 과거를 더 잘 회상할 수 있고, 지금의 문제둘을 좀 더 완벽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려면 아마도 인간의 정신은 더욱 고양되어야만 할 것이다. 만약 인간의 노력이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제한된 기억을 흑사시켜서 스스로 정체되지 않으려면, 대단히 복잡한 기록들을 기계화하는 문명을 만들 필요가 있다. 만약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잊을 수 있는 특권과 잊고 있던 것이 중요해질 때 다시 기억할 수 있는 확신이 있다면, 이 여행을 더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 멀티미디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277p, 버니바 부시


  1. 멀티미디어 – 바그너에서 가상현실까지에 기사 전문의 한국어 번역이 실려있다. 
  2.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출간된 한국어 번역서가 있다.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이론
, nacy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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