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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되어야하며, 그리고 활용되어야한다

기록은 자산이다. 기록이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기록은 되어야하며, 그리고 활용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상에는 어마하게 많은 정보가 있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인류의 집단 지성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기록은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개인들이 이러한 공개된 기록에 접근하고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검색엔진의 몫이다. 그래서 기록은 되어야하며, 활용되어야한다.

일반적으로 구글과 같은 범용적인 검색엔진은 사용자의 맥락까지 염두에 두진 않는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범용적인 것은 아니다. 기록은 방대하며, 검색엔진은 범용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는 개인화된 기록이다. 이는 개개인이 자신을 위해서나 국소적인 맥락에서 일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를 가지고 우리가 보고 들은 것, 그리고 검색하고 탐구한 것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 한다. 개인화된 기록은 이를 보완하는 장치이며, 컴퓨터에 기반한 개인화된 기록 장치는 일반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저장용량을 제공한다. 위키위키, 블로그, 노트 애플리케이션, 서지 애플리케이션, 웹 스크랩 도구와 같은 것들은 모두 기록을 돕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들을 제공하는 도구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내제적인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나는 기록을 대하는 태도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경쟁력에 있어서 더 큰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그리고 이는 법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오래된 기업이 신생 기업에 비해서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점은 기록이라고 믿는다. 직원으로서 개인의 신체에 축적되는 경험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이 때 이 경험을 법인과 개인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기록밖에 없다. 만약에 이 경험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면, 개인은 회사에 다니면서 얻은 수많은 신체에 각인된 능력(혹은 기록)들을 가지고 회사를 떠날 수 있지만, 기업은 그 사람이 떠난 이후에 아무런 가치도 얻지 못 할 것이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전임자가 떠나고 나면, 후임자는 마치 백지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전임자가 떠날 때야 비로소 인수인계를 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빈틈이 많고 문서화 되기보다는 구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 내에 기록을 위한 충분한 시스템이 갖추어져있다면, 인수인계라는 것은 업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한에 대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질 것이다.

법인은 어떤 면에서 개인보다도 이러한 가치를 인지하는데 무능할 수 있다. 왜냐면 법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맥락에서 가치를 축적하는 것보다 당장 돈을 보는 것이 급급하기 때문이고, 법인은 스스로 기록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 하고, 항상 법인을 운영하는 주체들에 의해서 기록의 가치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이라고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보다 나은 점도 있다. 그 가치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시스템으로 잘 갖추기만 한다면 기록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고 또한 오랜 시간 남아 법인의 가치를 높여갈 것이다.

제 3세대 마크다운 에디터의 조건: 텍스트 번들과 하이브리드 에디터

이전 글에서는 플레인 텍스트로서 마크다운의 한계와 제 2세대 마크다운 에디터의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마크다운은 실패하지 않았다. 한계는 분명했지만,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다운 생태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확장세를 넓혀갔다. 나는 원래 제 1세대 텍스트 에디터인 이맥스(Emacs)의 오래된 팬이었다. 나는 이맥스의 편집 경험을 사랑했지만, 이맥스가 본질적으로 내 요구사항들을 해결할 수 없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맥스의 편집 경험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에디터들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율리시스(Ulysses)였다. 율리시스가 2010년 이전에도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크다운을 지원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율리시스가 마크다운 에디터도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은 율리시스III가 릴리즈된 2013년부터이다.1 나는 율리시스를 처음 등장한 제 3세대 마크다운 에디터로 정의한다. 이는 제 2세대 마크다운 에디터와는 현저한 차이와 함께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차이부터 살펴보자. 율리시스는 텍스트 에디터가 아니라 에버노트에 더 가까운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다. 텍스트 에디터와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경계는 미묘하지만 파일 기반이 아니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두 번째로 율리시스의 문법은 마크다운과 상당히 다르다. 특히 링크, 미디어, 주석 같은 것들은 텍스트가 아니다. 그래서 율리시스 에디터에서 작성한 문서는 플레인 텍스트의 흐릿한 경계에 있다. 이 문서는 마크다운이 아니고, 율리시스는 마크다운 형식으로 복사하기(Copy as Markdown)나 마크다운 형식으로부터 붙여넣기(Paste as Markdown) 기능을 제공한다. 마크다운이 아니라는 이보다 더 선언적인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제 2세대 마크다운 에디터들은 플레인 텍스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품고있었다. 그런데 율리시스는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라 파일 형식도 아니고, 심지어 완전한 플레인 텍스트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율리시스는 앞선 글에서 제시했던 플레인 텍스트 제 1원칙2도, 제 2원칙3도 지키지 않는다. 그저 마크다운 문법만을 빌려왔을 뿐 플레인 텍스트의 원칙이나 철학 같은 데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나는 앞선 글에서 “플레인 텍스트의 철학은 곧 마크다운 에디터의 한계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율리시스는 플레인 텍스트의 철학을 무시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훌륭한 글쓰기 애플리케이션이지만, 마크다운 에디터로만 평가해도 2가지 면에서 혁신적이었다.

첫 번째 혁신은 에디터다. 율리시스 에디터의 서식 표현 능력은 발군이다. 율리시스는 1세대나 2세대의 에디터들은 코드 하이라이팅에 기반해 서식 문법을 강조해주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에디터 위에서 서식을 직접 표현한다. 율리시스 에디터 위에서 제목은 제목이고, 강조는 강조이고, 목록은 목록이다.4 또한 링크, 이미지, 주석 같이 인위적인 기호들의 집합처럼 보이는 마크다운 문법들은 에디터 상에서 특수한 요소로 대체되었다. 그래서 율리시스 문서는 마크다운 문서가 아니라 온전한 글처럼 보인다. 율리시스의 에디터는 프리뷰와의 간극을 최소화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율리시스는 많은 제 2세대 마크다운 에디터가 제공하던 라이브 프리뷰 기능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식을 표현하는 리치 텍스트 에디터의 고질적인 문제는 서식이 글쓰기를 방해한다는 점이었다. 율리시스는 텍스트 에디터에서 마크다운 문서를 작성하는 경험을 전혀 해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율리시스의 에디터는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도 아니고 리치 텍스트 에디터도 아닌 하이브리드 에디터였다.

율리시스에서 글은 진짜 글처럼 보인다.

율리시스에서 글은 진짜 글처럼 보인다.

두 번째 혁신은 텍스트 번들(TextBundle) 포맷이다. 2014년 하반기에 율리시스에서는 공식적으로 텍스트번들(TextBundle) 포맷을 만들었다고 발표한다. 텍스트번들 포맷은 textbundle.org에서 공개되었으며, 율리시스 1.2.2, 마크드(Marked) 2.3.4부터 지원을 시작한다. 텍스트번들 포맷은 아주 단순하다. 단순히 다음 파일들을 포함한 .textbundle 확장자를 가진 디렉터리이다.

  • info.json: TextBundle 문서의 메타데이터를 저장한 json 형식의 파일이다.
  • text.*:: 플레인 텍스트 파일. 마크다운이면 text.md와 같이 저장하면 된다.
  • assets/: text.* 파일에서 참조하는 첨부 파일을 저장하는 디렉터리.

이게 전부다. 스펙도 아주 짧고 2014년 발표 이후에 변경된 내용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extBundl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명백히 플레인 텍스트 파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였고, 사소하지만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전 글에서 마크다운 에디터에서 미디어(혹은 첨부)를 처리하는 두 층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첫 번째 층는 에디터 상에서 이미지 표현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 층은 이미지를 참조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assets/ 디렉터리를 도입함으로써 TextBundle은 두 번째 층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한다. text.*assets/의 위치가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text.* 파일에서는 마음 놓고 assets/ 디렉터리 아래에 있는 파일을 참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플레인 텍스트가 아닌, 문서로서의 완결성이 유지된다. 이 포맷은 단순한 만큼, 단순한 진리를 깨우쳐준다. 문서는 플레인 텍스트 파일 하나가 아니다. 첨부파일과 메타 데이터를 모두를 포함해야만 완전한 문서인 것이다.

율리시스는 텍스트번들을 지원함으로써, 내부적으로는 플레인 텍스트의 제약에서 벗어난 진전을 이룰 수 있었고,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플레인 텍스트의 가치를 지킬 수 있었다. 특히 명세를 통해 안정적인 구조로 율리시스에서 작성한 구조를 내보내거나 읽어올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더 이상 플레인 순결한 텍스트 에디터가 아니다. 단지 텍스트번들 포맷으로 플레인 텍스트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율리시스는 이미지를 훨씬 더 과감하게 다룬다. 대부분의 마크다운 에디터들은 원칙적으로 이미지 참조만을 지원했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문서에 직접 이미지를 첨부하는 방식을 지원한다. 율리시스 사용자들은 이미지가 어디에 있는지 참조 문제에 대해서 신경쓸 필요가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미지를 드래그앤드롭하거나 이미지 바이너리를 복사해서 율리시스 에디터에 붙여넣는 것도 가능하다. 워드프로세서나 리치 텍스트 에디터에서는 당연히 지원하는 기능이다. 마크다운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플레인 텍스트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기능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율리시스에서는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기서 율리시스는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로서의 장점과 리치 텍스트 에디터의 장점 모두 취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층을 (아마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점이다.5 율리시스 에디터는 여전히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플레인 텍스트에서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보다도 더 퇴화한 것처럼 보인다. 율리시스에서 (IMG) 텍스트랑 같은 높이의 작은 이미지 상자가 생성된다. 그리고 이미지를 첨부할 수 있는 팝업이 뜨는데, 이는 플레인 텍스트의 편집 경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치명적인 단점일 수 있다. 또한 이미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IMG) 상자로 보인다. 이 요소를 클릭하면 그제서야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율리시스 자체의 코멘트 문법 ++ Comment ++로 이미지의 설명을 붙여두는 방법이 있지만, 미묘한 해결책이다.

율리시스를 사용해보면 율리시스의 글쓰기 경험에 대한 집착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율리시스 에디터가 다양한 면에서 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 건 글쓰기 경험에 이질적인 요소를 배제하고자 하는 율리시스의 철학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율리시스로 본 제 3세대 마크다운 에디터의 조건은 이렇다.

  • 하이브리드 에디터: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의 경험과 리치 텍스트 에디터의 편리함을 모두 취한 새로운 에디터
  • 텍스트 번들(TextBundle): 외부에 소통할 때 플레인 텍스트의 형식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중간 구조, 포맷.

정확히 이와 같지는 않더라도 이에 준하는 대안에 있어야한다.

내가 아는 한 두 번째로 등장한 3세대 마크다운 에디터는 바로 베어(Bear)였다. 베어는 2016년 말에 혜성 같이 등장한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제 1년 남짓 되어가는 베어는 율리시스와 같이 플레인 텍스트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플레인 텍스트로 글을 쓰는 경험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에디터를 탑재하고 있다. 베어 역시 율리시스와 마찬가지라 순수한 마크다운을 지원하는 에디터는 아니다. 베어의 기본 언어는 북극곰 마크업 언어라는 마크다운의 변종이다. 마크다운 호환 모드를 지원하지만 여전히 마크다운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베어 역시 이런 사소한 문제에 게의치 않는다. 그 대신 율리시스처럼 마크다운 형식으로 복사하기(Copy as Markdown)를 지원하고, 텍스트번들 형식을 지원한다.

베어는 율리시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글쓰기 경험이라는 면에서 율리시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만, 플레인 텍스트를 편집하는 경험에 있어서는 베어가 발군이다. 또한 베어는 이미지 첨부를 둘러싼 두 겹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 이미지는 문서에 포함 된다.6 그리고 이미지를 에디터에서 보여준다. 유레카!

순수한 플레인 텍스트를 신봉하고, 커먼마크(CommonMark)나 판독(Pandoc)과 같은 플레인 텍스트 기반의 파이프라인들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율리시스나 베어를 마크다운 에디터라고 부를 때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지도 모른다. 나는 율리시스나 베어가 플레인 텍스트 철학의 수호자였다기보다는 자신들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에 플레인 텍스트의 경험을 빌려다 사용한 애플리케이션들이라고 생각한다.7 그리고 이 접근은 좋았다. 적어도 나는 율리시스와 베어 덕분에 행복하다. 율리시스 덕분에 글쓰기가 다시 즐거워졌고, 베어 덕분에 개인 위키의 꿈을 다시 꾸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플레인 텍스트로 글을 쓰는 경험을 만끽하고 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게 없을 것 같은 2017년에도 여전히 글쓰기 애플리케이션들은 발전하고 있다. 많은 공백이 남아있다. 베어는 이제 등장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뿐이고, 새로운 경쟁자들은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플레인 텍스트 기반 글쓰기 도구들은 이제 여명을 맞이했을 뿐이다. 🐻


  1. 현재 내가 사용하는 버전은 율리시스 2.8.3인데 정확히는 율리시스III 2.8.3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나중에 이름에서 III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2. 플레인 텍스트의 제 1 원칙은 문자들로만 구성된다는 점이다. 
  3. 플레인 텍스트의 제 2 원칙은 플레인 텍스트를 다루는 애플리케이션은 플레인 텍스트로 입력으로 받고 플레인 텍스트로 출력해야한다는 점이다. 
  4. 안타깝게도 이미지는 이미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5. 이 글은 2017년 10월에 처음 작성되었다. 율리시스도 2017년 10월에 출시된 버전 12(37233)부터 에디터 상에서 이미지 프리뷰를 지원한다. 
  6. 심지어 마크다운의 이미지 참조 문법은 아예 지원하지 않는다. 
  7. 실제로 율리시스나 베어는 자신들의 메인 페이지에서 마크다운 기반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점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지금 해야할 일

모터사이클을 타고 코너를 돌 때에도 그렇습니다. 핸들을 꺾어 코너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코너를 빠져나가 가속으로 달리는 자신’을 떠올리고 그것에 상상적으로 ‘신체를 던져넣는 식으로 운전해야합니다.’ 코너를 계속 돌고 있는 리얼타임의 자신에게 동화되어 있으면, 모터사이클의 뒷바퀴 타이어는 미끌미끌 미끄러지기 시작해 운이 나쁘면 넘어집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미 일을 끝낸 자신’이라는 전미래적인 환상에 동화되지 않으면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습니다.
— 제 5강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 나를 이끈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우치다 다쓰루

경제 활동은 ‘미래를 향해 전 세계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여가는 역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주관적 행동의 집합이다. 그런데 모든 주관적 행동의 출발점은 가격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하고있다. 즉 경제 활동 이란 되돌아보면 모두 객관의 집합인 것이다. 주관적 행동이 속속 객관적 사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음의 주관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간다. 이 되풀이가 경제 활동이다.
— 143p, 제 5장 장기투자자에게 정보란 무엇인가, 불황에도 승리하는 사와카미 투자법, 사와카미 아쓰토

프로그래밍 이야기의 마지막 글은 2015년 12월에 작성되었다. 이 블로그는 루비의 정적 웹사이트 생성기 미들맨으로 만들어져있다. 2014년 초에는 정적 웹사이트 생성기를 지지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2015년 말에는 이미 이러한 도구들에서 마음이 떠나있었다. 이제는 그 방법이 매력이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서들을 조직하고 관리한다는 면에서는 차라리 워드프레스가 낫다. 컨텐츠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기 위해서 파일보다는 데이터베이스가 사용되어야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워드프레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몇 년간 대안을 고민하고 구현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구현보다는 몽상을 한다. 완성되지 않은 몽상에는 끝이 없다. 몽상은 표현과 비슷하다. 혀끝에서 맴도는 말은 그 말이 내뱉어지기 전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적절한 대안은 트위터였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생각들을 내뱉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완성된 세계는 결코 완성된 채로 도래하지 않는다.

우츠다 다쓰루의 표현을 빌리자면 몽상이란 이미 코너를 빠져나가 가속으로 달리는 자신을 상상하는 일과 같다. 이러한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결여되어있다면 결코 현재 시점에서 코너를 빠져나갈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거다. 너무 몽상만을 하고 있는 나머지,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 것조차 시작하지 못 한 것이다. 이래서는 결코 코너를 돌고 있는 현재 시점이 도래하지 않는다. 사와카드 아쓰토의 표현을 빌린다면 주관적 행동이 속속 객관적 사실을 만들어내고, 이 객관적 사실이 다시 다음 주관적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역동성이 결여되어있다.

미래는 추론의 영역이자, 상상의 영역이다. 그래서 객관적 사실들로부터 합리적인 추론을 해야하고, 그 위에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상상할 줄 알아야한다. 상상력이 없다면 미래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래를 만드는 데 동참하려면 상상력으로부터 지금 해야하는 일을 결정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일단 모터사이클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코너를 돌기 전에 시동은 걸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완벽하기보다는 행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만들기
블로그가 필요하다는 말에 이제는 공감하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여기까지 공감했다면 시작하는 방법도 궁금할 것이다. 시작은 무척 쉽다. 워드프레스 호스팅이나 블로거 같은 무료 서비스를 활용하면 5분 내에 블로그를 만들 수 있다.
— 21장 블로그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소프트 스킬, 존 손메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작하는 것완성하는 것을 착각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시작하는 데는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진 않다.

개인 위키의 꿈: 베어(Bear) 8개월 사용기

베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우연이었다. 2017년 초 어느 스터디 모임에서 다른 분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고 깔끔한 에디터에 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크다운을 지원하지만 이미 율리시스(Ulysses)MWeb을 잘 사용하고 있었기에 큰 매력을 느끼진 못 했다. 그러다가 노트 애플리케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베어 이야기가 한 번 나왔다. 누군가 베어를 잘 아는 사람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베어를 한 번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이 이제 8개월 전이다.1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글은 율리시스에서 작성하고 있지만) 이제 다른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대부분의 시간을 베어와 함께 보낸다.

에버노트의 초기 모습.  클라우드 싱크 기능은 없었고, 오직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본질에 충실했다.

에버노트의 초기 모습. 클라우드 싱크 기능은 없었고, 오직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본질에 충실했다.

나는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팬이다. 클라우드도 지원하지 않은 시절부터 에버노트를 사용해왔다. 에버노트는 나를 제목없음.txt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파일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신 노트들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클라우드의 도래와 함께 이러한 노트들은 자연스럽게 다수의 기기들에서 공유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에서 기록들은 산만하게 부유한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을 잘 써서 이미 수백 수천 개의 노트가 쌓여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래된 노트들은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된다. 검색과 태그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많은 노트들을 정리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정보를 조직한다는 관점에서 노트 애플리케이션보다 위키위키를 선호한다. 협업을 통한 글쓰기에 있어서 위키위키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위키위키에는 협업 못지 않게 중요한 특징이 있다. 위키위키의 문서는 주제 별로 작성된다. 주제 별로 작성되는 문서들이 쌓여나가고 사용자는 [[Document]]와 비슷한 문법을 사용해서 문서에서 문서로 가는 구멍을 만든다. 위키의 문법은 인터넷 상의 하이퍼링크보다 민첩하고, 긴밀하게 위키위키 내부의 문서들을 조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위키위키의 문서들은 시간의 흐름에 전혀 게의치 않는다. 위키위키에서 협업을 지운 개인위키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구이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편리하지만 정보를 조직하기엔 부족함이 있고, 위키위키는 정보를 조직하기엔 매력적이지만 불편하다. 개인위키로 쓸만한 도구는 많지않다. 대부분은 웹 기반이었고, 사용자 경험에서 노트 애플리케이션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10년 전쯤엔 위키를 사용했지만, 노트 애플리케이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개인 위키를 포기한지도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란 늘 개인위키의 불완전한 대안일 뿐이었다.

이제 베어가 등장할 시간이다. 베어는 여느 노트 애플리케이션과 다른 기능을 하나 가지고 있다. [[Link]] 문법을 사용해서 다른 노트에 링크를 걸 수 있다. 위키위키의 그 문법이다. 베어는 개인위키로 기획된 애플리케이션은 아니지만, 이 기능 하나만으로 가뭄에 단비 같은 노트 애플리케이션이 되어주었다. 나는 베어를 개인위키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문서는 주제 별로 작성되고, 문서들은 링크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다. 베어는 이제 내 지식을 저장하고, 외부의 정보를 스크랩하고, 글도 쓰는 하이브리드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8개월간 2200개의 노트를 작성했다.2 위키로서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간단한 알프레드(Alfred) 워크플로우를 작성해서 사용하고 있다.3 이렇게 나는 다시 개인위키의 꿈을 꾸고 있다.4

그렇다고 내가 베어에 반한 것이 단순히 위키 문법을 지원하기 때문은 아니다. 베어는 겉보기에는 단순해보인다. 하지만 이는 겉멋이 없을 뿐이고, 내실은 탄탄하다. 베어를 처음 시작한다면 FAQ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다양한 기능에 깜짝 놀랄 것이다. 무엇보다도 베어의 마크다운 에디터는 독보적이다.5 프리뷰 없이 에디터가 그 자체로 프리뷰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베어는 율리시스의 계보를 잇는다.6 문서 작성은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와 다르지 않지만, 에디터의 표현 능력은 리치 텍스트 에디터 뺨친다. 베어는 율리시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베어의 에디터는 이미지를 문서에 저장할 수 있으며7 에디터 상에서 보여준다.8 플레인 텍스트와 리치 텍스트 사이에서 사용자들은 이미지의 화면 출력 여부에 대해서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마크다운 에디터들이 마크다운을 HTML로 렌더링한 결과를 다시 프리뷰로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나는 이 방식을 진심으로 싫어한다.9

베어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율리시스에 충분히 매력을 느꼈던 입장에서, 위키 기능까지 겸비한 베어는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노트 애플리케이션이었다.

  1. 이 글은 2017년 10월에 작성했다.
  2. 베어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이 정도 규모에서도 느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Devonthink나 Papers3 등 데이터에 비례해서 느려지는 데스크탑 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3. 아직 내가 만든 워크플로우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워크플로우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픈소스로 만들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chrisbro/alfred-bear 를 사용해보길.
  4. 사실 베어에서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문서 조직 기능은 내부 링크가 아니다. 베어는 디렉터리 분류를 지원하지 않고 문서 태그를 지원하는데, 이 방식도 독특하다. 트윗처럼 본문 내부의 원하는 위치에 태깅(#태그)을 할 수 있다.
  5. 엄밀한 의미에서 율리시스도 베어도 마크다운 에디터는 아니다. 마크다운과 거의 비슷한 문법을 지원한다. 대신 마크다운 출력과 Copy as Markdown 기능을 지원한다.
  6. 나는 율리시스와 베어가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7. 일반적인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는 이미지를 저장하는 기능일 지원하지 않는다. 율리시스가 처음으로 Textbundle이라는 포맷을 통해서 이미지와 플레인 텍스트가 결합된 포맷을 지원했으며, 베어는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8. 율리시스도 2017년 10월에 출시된 버전 12(37233)부터 에디터 상에서 이미지 프리뷰를 지원한다.
  9. 내가 이 방식을 원래부터 싫어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율리시스나 베어를 사용해본 지금은 그렇다.

트위터를 그만두며

살아남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침묵하는 것입니다.

— 존 론슨,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

트위터는 현재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공간이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서 멀어져버렸다. 트위터를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광경들을 반복해서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에 시달린다. 결국 트위터에서의 겪고 목격한 것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 할 것 같다.

트위터가 귀여웠던 적이 있었다. 트위터의 멘션리트윗도 사실은 트위터가 발명한 기능이 아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마이크로 블로깅 플랫폼 위에서 사용자들이 제안한 재치였고, 그것들은 트위터 위에서 기능이 되었다. 이윽고 트위터의 공고한 정체성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것들로부터 파생한 분명한 나쁜 점이 있다. 때때로 플랫폼의 나쁜 점은 사용자들의 오용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트위터의 나쁜 점은 트위터의 본질 그 자체이다. 트위터는 그렇게 디자인된, 그리고 그렇게 디자인 되어가고 있는 플랫폼이다. 둘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트위터는 설계된 대로 동작한다. 트위터는 정확히 트위터의 리더십 팀이 원하는 작동방식 대로 작동한다. 끊임없는 분노, 증오, 걱정, 불안, 괴롭힘은 모두 설계된 것이다.

Twitter works that way by design. Twitter is working exactly like Twitter’s leadership team wants it to be working. The constant outrage, the hatred, the anxiety, the harassment — it’s all by design.

Twitter’s Great Depression – Mike Monteiro – Medium

트위터에서는 발신자에게도 수신자에게도 주도권이 없다. 트위터에서 타인의 발언에 대한 자극은 대단히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 특히 트위터 사용자에게 리트윗이란 데옥시리보 핵산 수준에 새겨져있는 명령과도 같다. 트위터에서는 특히 많이 리트윗되는 트윗들을 피하기 어렵다. 트위터는 이러한 트윗을 강제로 보여주진 않지만, 노출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그런 트윗들의 절반은 농담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절반은 분노와 정의감에 물들어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분노가 적절하고 공감해야한다고 느꼈다. 내 경우, 그러한 공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나, 윤창중이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을 때 그랬다. 그 때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우리가 함께 분노하고 리트윗해야만 하는 것이 트위터라는 매체의 좋은 점이라고 믿었다.

당신은 조리돌림 당했다”(So You’ve Been Publicly Shamed)는 저자 존 론슨(@jonronson)이 자신의 가짜 계정(@jon_ronson)을 만들어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해 조리돌림을 촉발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했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한 쪽 극단에는 트위터 조리돌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저스틴 사코(번역)의 사례가 있다. 사실 다른 경우에도 트위터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달되고 소비되는 형식 자체가 이미 어딘가 잘못되어있다. 합리성은 어느 순간 심연으로 사라져버린다. 어떤 면에서 단지 공감하고 분노할 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트위터답게 얘기하면 세상에(혹은 트위터 상에) 리트윗이 많이될만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소재가 많을수록 좋다.

트위터의 지난 5년간의 주가 그래프(2014-2018)

트위터의 지난 5년간의 주가 그래프(2014-2018)

트럼프 당선 이후 트위터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트위터는 2013년 기업 공개 이후 2018년 4분기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주가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트위터야 아프지마’라고 걱정해왔지만 한동안 트위터가 망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트럼프와 미국의 정치는 끊임없는 조리돌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다름은 트위터의 소재가 된다. 일본에서는 트럼프가 트위터의 지하철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트위터와 트럼프의 관계는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트위터는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에 대한 분노가 많아질수록 흥하는 매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분노 위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옳기 때문에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트위터는 트럼프도, 이러한 사람들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과 트윗만 피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트위터 위에서 통제권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리트윗을 모두 꺼버렸더니 평화가 찾아왔다는 더 아틀랜틱의 기사는 이런 경우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특정 사용자의 팔로워나 팔로잉을 모두 차단해버리는 블락 체인과 같은 도구도 있다. 이는 인터페이스 조작이라는 점에서 나와 트위터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교묘하게 숨겨버리는 기법이다. 이렇게까지 할만한 가치가 있다. 트위터는 그만큼 매력적인 플랫폼이니까. 하지만 그 뒤에서 트위터가 작동하는 방식까지 변화시키지는 못 한다.

트위터에도 사용자의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멍청하게 설계되어있는 지를 본다면, 트위터가 사용자에게 이러한 통제권을 되돌려주는 것을 얼마나 꺼리는 지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트윗을 끌 수 있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의 리트윗만을 끌 수 있다. 그 사람의 리트윗은 안 보여도 하트를 누른 컨텐츠가 타임라인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끌 수도 없다. 마치 리트윗 끄기 기능을 트위터 스스로 온몸으로 부정하는 것 같다. 모든 사용자의 리트윗을 꺼버려도 문제다. 새로운 사용자를 팔로우할 때마다 일일히 리트윗을 꺼야한다.

트위터에는 계정을 숨기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다른 사용자가 내 트윗을 리트윗하지 못 하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능은 리트윗에 대한 통제권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다. 계정 자체를 숨겨버리기 때문에 이미 팔로워가 아닌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못 한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의도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 통제권을 회복하려고 할수록 늪에 빠진 기분이 되어버린다. 트위터란 원래 그렇게 디자인되어있는 것이다.

제 친구 아담 커티스가 말하길 인터넷은 1980년대 존 카펜터의 영화같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서로에게 소리치고 총을 쏘기 시작해 결국 모두가 안전한 곳을 찾아 달아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요.

— 존 론슨,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

트위터 중독자에게 트위터를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다. 표현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다면 적절한 달아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트위터는 그 고유한 성격에 있어서 대체할 수 없는 매체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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