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tweet overflow

개인 위키의 꿈: 베어(Bear) 8개월 사용기

베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우연이었다. 2017년 초 어느 스터디 모임에서 다른 분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고 깔끔한 에디터에 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마크다운을 지원하지만 이미 율리시스(Ulysses)MWeb을 잘 사용하고 있었기에 큰 매력을 느끼진 못 했다. 그러다가 노트 애플리케이션 이야기를 하면서 베어 이야기가 한 번 나왔다. 누군가 베어를 잘 아는 사람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베어를 한 번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작이 이제 8개월 전이다.1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글은 율리시스에서 작성하고 있지만) 이제 다른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글을 쓰는 대부분의 시간을 베어와 함께 보낸다.

에버노트의 초기 모습.  클라우드 싱크 기능은 없었고, 오직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본질에 충실했다.

에버노트의 초기 모습. 클라우드 싱크 기능은 없었고, 오직 데이터베이스로서의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본질에 충실했다.

나는 노트 애플리케이션의 팬이다. 클라우드도 지원하지 않은 시절부터 에버노트를 사용해왔다. 에버노트는 나를 제목없음.txt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파일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신 노트들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클라우드의 도래와 함께 이러한 노트들은 자연스럽게 다수의 기기들에서 공유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에서 기록들은 산만하게 부유한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을 잘 써서 이미 수백 수천 개의 노트가 쌓여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래된 노트들은 자연스럽게 잊혀지게 된다. 검색과 태그라는 강력한 도구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많은 노트들을 정리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정보를 조직한다는 관점에서 노트 애플리케이션보다 위키위키를 선호한다. 협업을 통한 글쓰기에 있어서 위키위키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위키위키에는 협업 못지 않게 중요한 특징이 있다. 위키위키의 문서는 주제 별로 작성된다. 주제 별로 작성되는 문서들이 쌓여나가고 사용자는 [[Document]]와 비슷한 문법을 사용해서 문서에서 문서로 가는 구멍을 만든다. 위키의 문법은 인터넷 상의 하이퍼링크보다 민첩하고, 긴밀하게 위키위키 내부의 문서들을 조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위키위키의 문서들은 시간의 흐름에 전혀 게의치 않는다. 위키위키에서 협업을 지운 개인위키는 여전히 매력적인 도구이다.

노트 애플리케이션은 편리하지만 정보를 조직하기엔 부족함이 있고, 위키위키는 정보를 조직하기엔 매력적이지만 불편하다. 개인위키로 쓸만한 도구는 많지않다. 대부분은 웹 기반이었고, 사용자 경험에서 노트 애플리케이션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10년 전쯤엔 위키를 사용했지만, 노트 애플리케이션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개인 위키를 포기한지도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노트 애플리케이션이란 늘 개인위키의 불완전한 대안일 뿐이었다.

이제 베어가 등장할 시간이다. 베어는 여느 노트 애플리케이션과 다른 기능을 하나 가지고 있다. [[Link]] 문법을 사용해서 다른 노트에 링크를 걸 수 있다. 위키위키의 그 문법이다. 베어는 개인위키로 기획된 애플리케이션은 아니지만, 이 기능 하나만으로 가뭄에 단비 같은 노트 애플리케이션이 되어주었다. 나는 베어를 개인위키로 사용하고 있다. 모든 문서는 주제 별로 작성되고, 문서들은 링크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다. 베어는 이제 내 지식을 저장하고, 외부의 정보를 스크랩하고, 글도 쓰는 하이브리드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8개월간 2200개의 노트를 작성했다.2 위키로서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간단한 알프레드(Alfred) 워크플로우를 작성해서 사용하고 있다.3 이렇게 나는 다시 개인위키의 꿈을 꾸고 있다.4

그렇다고 내가 베어에 반한 것이 단순히 위키 문법을 지원하기 때문은 아니다. 베어는 겉보기에는 단순해보인다. 하지만 이는 겉멋이 없을 뿐이고, 내실은 탄탄하다. 베어를 처음 시작한다면 FAQ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의외로 다양한 기능에 깜짝 놀랄 것이다. 무엇보다도 베어의 마크다운 에디터는 독보적이다.5 프리뷰 없이 에디터가 그 자체로 프리뷰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베어는 율리시스의 계보를 잇는다.6 문서 작성은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와 다르지 않지만, 에디터의 표현 능력은 리치 텍스트 에디터 뺨친다. 베어는 율리시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베어의 에디터는 이미지를 문서에 저장할 수 있으며7 에디터 상에서 보여준다.8 플레인 텍스트와 리치 텍스트 사이에서 사용자들은 이미지의 화면 출력 여부에 대해서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마크다운 에디터들이 마크다운을 HTML로 렌더링한 결과를 다시 프리뷰로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나는 이 방식을 진심으로 싫어한다.9

베어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율리시스에 충분히 매력을 느꼈던 입장에서, 위키 기능까지 겸비한 베어는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노트 애플리케이션이었다.

  1. 이 글은 2017년 10월에 작성했다.
  2. 베어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이 정도 규모에서도 느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Devonthink나 Papers3 등 데이터에 비례해서 느려지는 데스크탑 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3. 아직 내가 만든 워크플로우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워크플로우들을 이미 다른 사람들이 오픈소스로 만들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chrisbro/alfred-bear 를 사용해보길.
  4. 사실 베어에서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문서 조직 기능은 내부 링크가 아니다. 베어는 디렉터리 분류를 지원하지 않고 문서 태그를 지원하는데, 이 방식도 독특하다. 트윗처럼 본문 내부의 원하는 위치에 태깅(#태그)을 할 수 있다.
  5. 엄밀한 의미에서 율리시스도 베어도 마크다운 에디터는 아니다. 마크다운과 거의 비슷한 문법을 지원한다. 대신 마크다운 출력과 Copy as Markdown 기능을 지원한다.
  6. 나는 율리시스와 베어가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7. 일반적인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는 이미지를 저장하는 기능일 지원하지 않는다. 율리시스가 처음으로 Textbundle이라는 포맷을 통해서 이미지와 플레인 텍스트가 결합된 포맷을 지원했으며, 베어는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8. 율리시스도 2017년 10월에 출시된 버전 12(37233)부터 에디터 상에서 이미지 프리뷰를 지원한다.
  9. 내가 이 방식을 원래부터 싫어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율리시스나 베어를 사용해본 지금은 그렇다.

트위터를 그만두며

살아남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침묵하는 것입니다.

— 존 론슨,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

트위터는 현재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이름으로 가장 열심히 활동했던 공간이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서 멀어져버렸다. 트위터를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광경들을 반복해서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에 시달린다. 결국 트위터에서의 겪고 목격한 것들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 할 것 같다.

트위터가 귀여웠던 적이 있었다. 트위터의 멘션리트윗도 사실은 트위터가 발명한 기능이 아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마이크로 블로깅 플랫폼 위에서 사용자들이 제안한 재치였고, 그것들은 트위터 위에서 기능이 되었다. 이윽고 트위터의 공고한 정체성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이것들로부터 파생한 분명한 나쁜 점이 있다. 때때로 플랫폼의 나쁜 점은 사용자들의 오용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트위터의 나쁜 점은 트위터의 본질 그 자체이다. 트위터는 그렇게 디자인된, 그리고 그렇게 디자인 되어가고 있는 플랫폼이다. 둘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

트위터는 설계된 대로 동작한다. 트위터는 정확히 트위터의 리더십 팀이 원하는 작동방식 대로 작동한다. 끊임없는 분노, 증오, 걱정, 불안, 괴롭힘은 모두 설계된 것이다.

Twitter works that way by design. Twitter is working exactly like Twitter’s leadership team wants it to be working. The constant outrage, the hatred, the anxiety, the harassment — it’s all by design.

Twitter’s Great Depression – Mike Monteiro – Medium

트위터에서는 발신자에게도 수신자에게도 주도권이 없다. 트위터에서 타인의 발언에 대한 자극은 대단히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 특히 트위터 사용자에게 리트윗이란 데옥시리보 핵산 수준에 새겨져있는 명령과도 같다. 트위터에서는 특히 많이 리트윗되는 트윗들을 피하기 어렵다. 트위터는 이러한 트윗을 강제로 보여주진 않지만, 노출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그런 트윗들의 절반은 농담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절반은 분노와 정의감에 물들어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분노가 적절하고 공감해야한다고 느꼈다. 내 경우, 그러한 공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나, 윤창중이 청와대 대변인이 되었을 때 그랬다. 그 때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우리가 함께 분노하고 리트윗해야만 하는 것이 트위터라는 매체의 좋은 점이라고 믿었다.

당신은 조리돌림 당했다”(So You’ve Been Publicly Shamed)는 저자 존 론슨(@jonronson)이 자신의 가짜 계정(@jon_ronson)을 만들어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해 조리돌림을 촉발시킴으로써, 정의를 구현했던 경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한 쪽 극단에는 트위터 조리돌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저스틴 사코(번역)의 사례가 있다. 사실 다른 경우에도 트위터가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전달되고 소비되는 형식 자체가 이미 어딘가 잘못되어있다. 합리성은 어느 순간 심연으로 사라져버린다. 어떤 면에서 단지 공감하고 분노할 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트위터답게 얘기하면 세상에(혹은 트위터 상에) 리트윗이 많이될만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소재가 많을수록 좋다.

트위터의 지난 5년간의 주가 그래프(2014-2018)

트위터의 지난 5년간의 주가 그래프(2014-2018)

트럼프 당선 이후 트위터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트위터는 2013년 기업 공개 이후 2018년 4분기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다. 주가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트위터야 아프지마’라고 걱정해왔지만 한동안 트위터가 망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트럼프와 미국의 정치는 끊임없는 조리돌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다름은 트위터의 소재가 된다. 일본에서는 트럼프가 트위터의 지하철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트위터와 트럼프의 관계는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트위터는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에 대한 분노가 많아질수록 흥하는 매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분노 위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옳기 때문에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트위터는 트럼프도, 이러한 사람들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람들과 트윗만 피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트위터 위에서 통제권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다. 리트윗을 모두 꺼버렸더니 평화가 찾아왔다는 더 아틀랜틱의 기사는 이런 경우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특정 사용자의 팔로워나 팔로잉을 모두 차단해버리는 블락 체인과 같은 도구도 있다. 이는 인터페이스 조작이라는 점에서 나와 트위터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교묘하게 숨겨버리는 기법이다. 이렇게까지 할만한 가치가 있다. 트위터는 그만큼 매력적인 플랫폼이니까. 하지만 그 뒤에서 트위터가 작동하는 방식까지 변화시키지는 못 한다.

트위터에도 사용자의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멍청하게 설계되어있는 지를 본다면, 트위터가 사용자에게 이러한 통제권을 되돌려주는 것을 얼마나 꺼리는 지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트윗을 끌 수 있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의 리트윗만을 끌 수 있다. 그 사람의 리트윗은 안 보여도 하트를 누른 컨텐츠가 타임라인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끌 수도 없다. 마치 리트윗 끄기 기능을 트위터 스스로 온몸으로 부정하는 것 같다. 모든 사용자의 리트윗을 꺼버려도 문제다. 새로운 사용자를 팔로우할 때마다 일일히 리트윗을 꺼야한다.

트위터에는 계정을 숨기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다른 사용자가 내 트윗을 리트윗하지 못 하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능은 리트윗에 대한 통제권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다. 계정 자체를 숨겨버리기 때문에 이미 팔로워가 아닌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글을 읽지 못 한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의도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 통제권을 회복하려고 할수록 늪에 빠진 기분이 되어버린다. 트위터란 원래 그렇게 디자인되어있는 것이다.

제 친구 아담 커티스가 말하길 인터넷은 1980년대 존 카펜터의 영화같다고 하더군요. 모두가 서로에게 소리치고 총을 쏘기 시작해 결국 모두가 안전한 곳을 찾아 달아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요.

— 존 론슨, 온라인 상의 모욕이 통제를 벗어날 때 생기는 일

트위터 중독자에게 트위터를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다. 표현에 대해서도, 관계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다면 적절한 달아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트위터는 그 고유한 성격에 있어서 대체할 수 없는 매체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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